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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연구소

남북 화해 시대와 유엔군사령부

 

 남북 화해 시대와 유엔군사령부

 

법무법인 율립 <공공가치프로젝트팀>

송봉준

 

 

1. 들어가며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이 발표되어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높아지던 시기에 2018년 8월 유엔군사령부가 남북의 경의선 철도 현지조사를 위한 군사분계선 통과요청에 대하여 긴급 통행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출발일 48시간 이전에 통행 계획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허하였다는 언론 보도는 상당히 충격이었다. 유엔군사령부의 행위가 정전협정에서 부여한 목적,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전협정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지, 한국 정부의 비군사적 행위, 평화를 위한 활동까지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에 정전협정이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살펴본 후,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정전상태를 항구적인 평화상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엔군사령부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 검토해본다.

 

2. 탈냉전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가. 데탕트와 유엔군사령부 해체 결의

 

미·소 냉전시대가 펼쳐지면서 한반도는 분단과 전쟁을 겪었고, 냉전의 대립 속에서 한국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데탕트 시기에 이르러 미국은 한국전쟁 이래 형성되어 온 한반도의 냉전적 구도의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고, 1971년 미 대사관의 한 전문은 “한국은 1948년의 무력한 피후견국의 위치에서 지금은 크게 발전된 국가로 변모했다. …유엔군사령부는 한국에 대한 유엔의 책임을 상징적으로만 나타내는 것이 되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실제적인 내용은 대부분 없어져 버렸다.”며 유엔군사령부의 존재에 대해 재검토를 제의하기도 하였다. 1975년 제30차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군사령부 해체에 관한 서방측 및 공산측 결의안이 모두 통과되었다. 이 두 결의안은 모두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고, 다만 서방측 결의안이 유엔군사령부 해체에 앞서 정전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관련국 간 협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만을 강조하였을 뿐이었으나, 협의 자체가 성사되지 못하였다. 

 

나. 탈냉전에 따른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구상

 

냉전 종식에 따라 미 국방부는 1990년 4월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East Asia Strategic Initiative)’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미국의 목표는 북한의 공격을 억제하고, 남북대화와 신뢰구축 조치를 통해 정치적,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며, 주한미군을 주도적 역할에서 보조적 역할로 전환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와 지상구성군사령부 사령관에 한국군 장성을 임명하였다.

 

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 회원국 승인

 

1991년 제46차 유엔 총회 개막일인 9월 17일 남·북한이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다. 유엔 헌장 제4조에 따르면, 회원국 자격은 이 헌장에 규정된 의무를 수락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기구가 판단하는 모든 여타 평화 애호국에 열려 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1항은 “주권평등 원칙” 등 회원국이 지켜야 할 원칙을 규정하고 있어, 회원국은 헌장에 따른 권리·의무를 가지게 되어 타회원국의 국내문제에 간섭할 수 없고, 타회원국의 영토보전 및 정치적 독립을 해하여서는 아니 되며, 무력사용 금지 및 평화적 수단에 의한 분쟁의 해결원칙 등을 지켜야 한다. 유엔 회원국이 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엔의 각 기관 및 회원국 사이에서 평등한 국제법 주체로 인정되었고, 국제사회에서 여타 회원국과 동등하게 유엔 헌장에 따른 권한과 의무를 갖게 되었다.

 

라. 소결

 

대한민국의 영토보전 및 정치적 독립의 보장에 대해 유엔 다른 회원국은 이를 부정할 수 없고, 존중하여야 하며, 대한민국의 주권행사에 대해서 유엔군사령부도 존중하여야 한다. 남과 북은 유엔 가입 후 30년 동안 유엔 헌장 제2조의 무력사용 금지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탈냉전시대 한반도에서의 무력사용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도록 하는 것은 ‘유엔 헌장’이다. 따라서 남과 북 사이에 정전협정의 적용이 없다 하더라도 남과 북은 유엔 헌장 제2조에 따라 한반도에서 무력행위를 함부로 할 수 없다.

 

3. 정전협정의 현실과 한계


가. 군사정전위원회의 기능 상실

 

군사정전위원회는 정전협정의 이행 감독, 정전협정 위반사건의 협의·처리,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 주관 등의 임무와 기능을 수행한다. 군사정전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매일 개회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본회의는 1953년 7월 28일 제1차 회의를 시작한 이후 1991년 2월 13일까지 총 459차례 개최되었다. 그러나 1991년 3월 25일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측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이 처음으로 임명된 후, 조중측은 본회의 참석을 거부하였고, 1994년 북한군, 중국군 대표들까지 철수시켜 버렸다. 이후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는 2021년 현재까지 30년 동안 개최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1994년 5월 24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였다. 이후 1998년부터 유엔군사령부와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의 장성급회담이 정전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정전협정 제61항은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적대 쌍방 사령관들의 상호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정전협정의 수정으로 볼 수는 없다. 결국,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과 정전협정의 군사정전위원회가 아닌 새로운 대화 기구를 개설하고, 이를 통해서 정전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나. 1956년 중립국감독소조의 활동중단으로 유명무실한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웨덴과 스위스,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로 구성된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임무는 중립국감독소조들을 지정된 상대방 지역에 파견하여 군대의 증원이나 무기 등의 반입을 감독하고, 상대방 지역에서 벌어지는 정전협정 위반사건을 조사하는 것이다. 유엔군사령부는 1956년 5월 31일 군사정전위원회 제70차 본회의에서 북쪽에서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남쪽에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비정상적인 활동 때문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활동은 실패했다며 20개 중립국감독소조에 대한 기능을 잠정 중지할 것을 선언하고, 남한 지역에 파견된 조중측 중립국감독소조들을 철수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중립국감독소조의 활동이 1956년 중지되었고, 이후 북한은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 1995년 폴란드를 추방하였다. 현재 스웨덴과 스위스는 한국에 머무르며 정전협정에서 규정한 임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비무장지대 남쪽 지역 일대를 순찰하거나 한미 연합훈련에 참관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중립국감독위원회라는 이름만을 유지하고 있다.

 

다. 소결

 

1991년 이후 군사정전위원회는 열리지도 않고 있으며, 이미 1950년대에 감독기능 수행에 구조적 한계를 보여 온 중립국감독위원회는 유엔군사령관이 지명한 스웨덴과 스위스만이 정전협정에서 규정한 임무와는 전혀 무관한 활동을 하면서 이름만을 유지하고 있어 정전관리기구의 관리기능과 역할은 무력화, 무실화된 상태이다. 정전협정은 현재 군사 분계의 유지라는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4. 남북 화해 시대 남북 군사 합의에 의한 정전협정 한계극복 노력 및 한국군에 의한 실질적 정전협정 유지·관리


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정전협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남과 북은 여러 군사 합의를 하였다. 남과 북은 1991년 12월 채택하고,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의서’라 한다)’에 따라 남북 군사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하기로 하였다. 남북기본합의서 제9조는 상호 간의 무력불행사, 제11조에서 군사분계선을 불가침 경계선으로 전환, 제12조에서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추진하기 위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남북기본합의서는 정전협정의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정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 무력불행사, 불가침 경계선, 군사적 신뢰 조성과 군축 실현 등 새로운 평화체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전협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 비무장지대 일부구역 개방에 대한 국제연합군과 조선인민군 간 합의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공사의 군사적 보장을 위해서 2000년 11월 17일 제12차 장성급 회담에서는 국제연합군과 조선인민군 간의 비무장지대 일부를 개방하여 남북관리구역을 설정하는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이 합의서는 비무장지대의 일부구역을 개방하고, 이 구역에서 제기되는 군사적인 문제들은 정전협정에 따른 군사정전위원회가 아닌 ‘남과 북’의 군대 사이에 협의하여 처리하기로 하여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새로운 남북 간 합의를 창설하는 기본 틀로 이해할 수 있다. 이후 동해선의 경우도 2002년 9월 12일 개최된 제14차 장성급회담에서 ‘저진-온정리 간 철도와 송현리-고성 간 도로’가 통과하는 비무장지대 일부구역 개방에 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이런 합의는 남과 북에 의해서 사전에 실질적 합의가 주도되고, 유엔군사령부의 역할은 사후에 이를 담보하는 보조적인 것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2002. 9. 17.) 

 

이 합의서는 ‘남북관리구역’을 설정하여 남북이 안전을 위한 경비 병력을 운용하고, 일체의 도발 행위를 금지하며, 작업과 관련된 모든 군사 실무적 문제들은 군사정전위원회가 아닌 남북군사 실무책임자 간의 전화통지문을 통해 해결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점은 기존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간의 군사문제 해결을 부분적으로나마 대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남과 북은 2003년 1월 27일 남북군사실무회담을 통해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임시도로 통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를 서명하고 발효시키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남북교류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여러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로 풀어가고 있다. 

 

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2018. 09. 19.)

 

2018년 남과 북은‘판문점선언’을 발표하여,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위험 해소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이하 ‘9·19 군사합의’라고 한다)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서 판문점선언의 군사분야 합의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포괄적인 군사분야 합의서이다. 9·19 군사합의는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서해 해상의 평화수역화, 교류협력과 접촉 왕래 활성화를 위한 군사적 보장대책 강구,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강구 등에 관한 합의사항을 담고 있다. 2018년 11월 남과 북은 각각 비무장지대 내 11개 감시초소를 시범적으로 철수하였고, 12월 역사상 최초로 남북 공동검증반을 구성하여 철수상태를 점검하는 등 9·19 군사합의는 한반도에서 오랜 적대와 대립의 질서를 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로 바꾸어 나가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마. 한국군에 의한 실질적인 정전협정 유지·관리

 

유엔군사령관은 오래 전에 DMZ 매복 및 수색의 권한을 한국군에 넘겼고, 2004년 11월 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 임무를 한국군으로 전환하여, 군사분계선 전 지역의 경비책임을 한국군이 전담하게 되었다. 정전협정의 준수·유지도 한국군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이행되고 있다. 한국군이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위임을 받아 수행하고 있는 정전협정 조항은 제1항 비무장지대 설정 및 유지(쌍방 2㎞), 제2항 군사분계선 위치 표시, 제4항 군사분계선 표식물 설치·감독, 제5항 한강하구의 민용선박 통행, 제6항 비무장지대 내 적대행위 금지 등이 있고, 제12항 한반도 내 적대행위 완전중지·보장, 제13항 서해 5개 도서 통제, 제14항~제16항 지상·해상·공중 군사력의 경계선 존중, 해상봉쇄 금지, 영공 존중 등 10개 조항이다. 결국 DMZ(비무장지대)를 출입하고, MDL(군사분계선)을 통과하기 위한 정전협정 규정을 제외한 정전협정의 실질적이고 주요한 조항에 대한 집행을 한국군이 직접 수행하고 있다. 이에 2007년 한·미 양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전 시점에 DMZ(비무장지대) 출입승인을 포함한 정전관리 책임을 유엔군사령부에서 한국군으로 이양하기로 합의하기도 하였다.

 

5. 마치며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70년이 지난 현재, 세계의 냉전은 종식되었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2021년 7월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는 대한민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하였고,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이미 세계 10위에 해당한다. 또한, 한국군은 세계 군사력 순위 6위로 발돋움하였다. 정전협정이 군사 분계의 유지라는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남과 북은 여러 군사 합의를 통해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이행조치를 하면서 평화공존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정전협정의 유지·관리에 있어서 유엔군사령부의 역할은 미미하고, 한국군이 정전협정 유지 임무의 대부분을 직접 수행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정전협정 유지를 형식적으로도 유엔군사령부에 맡길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동안의 유엔군사령부가 했던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평가하고, 유엔군사령부의 정전협정 관리기능의 이양에 대해서 미국과 신속히 협의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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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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