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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애의 법원삼거리] 다시 9월 25일을 지나며

 

민중의소리ㅣ2021-10-04

[오민애의 법원삼거리] 다시 9월 25일을 지나며

 

 

2015년 11월 14일과 2016년 9월 25일. 해마다 같은 날짜가 돌아오면 소소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무언가 잊은 것이 아닌지 싶어진다. 지난 9월 25일, 이제는 입에 담는 게 어색해진 차벽, 살수차가 집회 때마다 동원됐던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의 직사살수에 운명을 달리한 고 백남기 농민의 5주기가 그렇게 지나갔다.

 

농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서울 집회에 참석하고자 집을 나섰던 백남기 농민은 무방비 상태에서 직사살수에 맞고 의식불명상태가 되었고, 한 차례도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10개월간 사경을 헤매다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집회’라는 방식을 통해 목소리를 모으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의 앞을 막아선 것은 차벽과 살수차, 최루액이었다. 이후 경찰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재판과 국가배상청구소송, 그리고 직사살수행위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집회에 대한 과도한 제재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폭력적 행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국가의 잘못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5년 4월과 5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렬과 노동자대회를 경찰차벽과 살수차, 최루액으로 막아서던 경찰은 같은 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물줄기를 쏟아냈다. 무엇을 요구하며,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서울 광화문 일대로 모이게 됐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갑호비상령까지 동원되고 집회를 주최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가 되어버렸다. 2015년 4월 민주노총 총파업대회, 5월 노동자대회 등을 주도한 혐의로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이었고,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이후 구속영장까지 발부되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경찰 폭력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 5주기

최루탄과 살수차는 사라졌지만

민중의 목소리보다 집회시위 양상만 좇는 현실은 여전

코로나19 위기에서 약자들 권리 보장 더욱 중요

 

경찰 차벽과 최루액, 살수차가 눈앞에서는 사라진 지금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코로나19 이후 집회를 주최하거나 집회에 참가하는 행위는 다른 이들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다뤄진다. 왜 모이고자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정부의 집회에 대한 대응에서도, 언론에서 집회에 다루는 방식에서도 집회의 ‘양상’만 강조될 뿐 집회라는 수단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생존권을 위협당하는 이들이,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침해당한 이들이, 공권력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고자 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자 하면, 돌아오는 것은 ‘왜 모이냐’는 날선 비난과 ‘원칙에 입각한 엄정대응’의 경고뿐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혹은 유일하게 집회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이들에게, 집회는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공공의 안녕을 볼모로 잡은 이기적인 수단이 되어버리고 만다.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5년 전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집회를 주최하고 진행하였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구속되었다.

 

유엔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특별보고관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위협을 다루기 위한 긴급조치는 필요하고 비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코로나19와 관련된 정부, 고용주의 대응을 비판할 수 있으며, 국가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중위생 위기 상황에서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발표했다. 전세계적 재난의 상황에서 어려움과 피해가 집중되는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헌법상 권리를 실현하는 것은, 방역을 이유로 배제하거나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보장의 필요성이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이에 따른 보장이 필요하다. 우리의 권리가 다스리고 통제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금이라고 확인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이 당장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집회의 자유가 평화롭게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있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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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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