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ㅣ2021-03-02
[오민애의 법원삼거리] 근로복지공단의 반가운 결정이 계속되기를
지난달 24일부터 근로복지공단은 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산업재해 관련 판결문을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개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별도의 가입절차나 비용 없이 ‘근로복지공단 산재 판례’ 사이트(바로가기:https://sanjaecase.kcomwel.or.kr/)에 접속하면 누구나 산재 판결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종합법률정보 사이트 등 별도의 사이트에서 확인되지 않으면 한 건당 1,000원씩 납부하고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사건번호나 사건의 내용, 키워드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검색하기 어려웠던 것에 비추어보면 산업재해 관련 판결문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다.
이토록 반가운 소식을 접하면서, 동시에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야했던 많은 이들이 생각났다. 특히 직업병으로 인해 이름도 낯선 희귀질환에 걸리거나 이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가혹한 ‘입증책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신청을 하면, 신청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근무환경을 조사하고 해당 질병의 의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한다.
사용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몸이 아닌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방진복을 입고 제대로 된 보호장구도 없이 주야간 교대근무를 했던 이들에게 찾아온 건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다발성경화증 등 희귀병이었다. 폐암, 간암 등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질병이더라도,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려운 상태에서 통상 발병 나이보다 이른 나이에 발병하여 급속히 진행되었다. 가족력이나 기저질환 없이 건강하던 이들이, 특정 공간에서 일하고 난 후 자신의 몸으로 일한 곳의 유해한 환경을 증명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내가 일했던 공정이 어떤 구조였는지, 어떤 물질을 사용했고 어떤 물질에 노출되는 환경이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잘 알 수 있는 것은 사업주다. 일하던 당시 작업환경은 이미 첨단시스템의 도입으로 상당부분 변경되어 있었고, 직업병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관련 자료가 폐기되었거나, 영업상의 비밀이라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사업장 관련 자료를 확보할 방법이 없다. 내 몸이 왜 아픈지를 밝혀야 하는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료를 확보해서 밝힐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더해, 질병의 발병원인이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정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분이 있은 후, 이에 대해 소송으로 다투어 불승인처분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고, 다행히 공단이 더 이상 다투지 않아 판결이 확정되고 산재보험을 지급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공단에서 승인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당 시간이 소요되고, 불승인 처분 이후 소송 진행과정에서 근무환경의 유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요청하고,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에게 다른 원인이 아닌 업무와 질병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감정을 진행하고, 회신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회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자료를 받고 회신을 받더라도, 이를 종합한 결과 불승인처분이 부당하다는 결과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또다시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법원이 불승인처분의 부당함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더라도, 그대로 소송절차를 마칠 수 있을지, 상급심으로 다툴지 여부에 대해서도 공단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공단의 처분단계부터 변화를
일하다가 몸이 아파 그만두게 되거나, 갑작스런 발병으로 사망에 이르고 남겨진 가족들이 그 질병과 사망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하는 시간은 가혹하리만치 길다. 법원에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이 완화되기는 하였지만,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은 여전히 노동자 혹은 그 가족의 몫이다. 신청과 처분, 소송과 판결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의 변화를 법원의 판단 기준의 변화에만 기대할 수는 없다.
모든 경우에 무조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이 요양급여 등의 신청을 받았을 때 이에 대한 처분을 하는 과정에서 근무환경에 대해 실질적으로 판단하고 의학적 원인 규명이 명확히 되지 않은 사정을 해당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고려하지 않기만 하더라도 많은 비용이 오롯이 노동자와 가족의 부담이 되는 현실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보다 가까이, 많은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판단과 결정이 산재 처리 과정에서도 나타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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