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이태원 참사 2주기] ② 엇갈린 판결들...진짜 진상규명은 지금부터
(김성수 기자 2024. 10. 31. 20:00)
최근 이태원 참사 핵심 책임자들에 대한 법원의 1심 판단이 나왔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유죄였지만 상급자인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도 법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유가족들은 오열했고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다.
앞으로 수 년이 더 걸릴 대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지켜봐야겠지만 결과는 낙관적이지 않다. 앞선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에서 경험했듯, ‘사회적 재난·참사’에 연루된 정부와 지자체 고위 공직자들을 법으로 단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설령 책임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이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그 과정이 남긴 기록은 의미를 갖는다. 이태원 참사를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사실관계들은 1심 선고에 앞서 진행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확인되고 정립됐다. 이 사실들을 뼈대로 전체 맥락을 촘촘하게 재구성할 때 우리는 이태원 참사의 진상에 다가설 수 있다.
뉴스타파는 이태원 참사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1심 판결을 분석했다. 또한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향후 이태원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반드시 조사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했다.
“대비도 대응도 부실”…이임재 전 용산서장 1심 ‘금고 3년’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배성중 부장판사)는 지난 9월 30일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로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서장에게 금고 3년, 송병주 전 용산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에게 금고 2년, 박인혁 전 용산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3팀장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참사 발생 후 1년 11개월만에 나온 판결이다.
법원은 이 전 서장이 핼러윈 인파에 대비하는 단계부터 과실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보면, 이 전 서장은 언론 보도와 용산서 내부 보고 등을 통해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핼러윈을 맞은 이태원 일대에 3년 만에 매우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다. 상급기관인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인파 관리 등 대비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비책을 세우는 과정에선 구체적 위험성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약 및 범죄 단속을 위한 경찰관 130여 명만 투입했을 뿐, 현장 상황을 파악할 정보 경찰 또는 혼잡 경비를 담당할 경비 경찰을 전혀 배치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일 사고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조치에 소홀했다고 판단했다. 압사를 예견하는 112 신고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 건 당일 오후 6시 34분부터다. 경찰 무전망에서는 위험 징후가 공유되고 있었다. 법원은 당시 이 전 서장이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관리를 지휘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태원에 정보와 경비 경력을 전혀 배치하지 않았었던 만큼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고 봤다.
특히 오후 9시경부터는 ‘코드0’ 신고가 접수되는 등 이태원 인파가 매우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현장 무전까지 송출됐다. 이 가운데는 도로로 떠밀려 나온 인파를 다시 인도로 밀어올리라는 부적절한 현장 지시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전 서장은 그 무렵 대통령실 앞 집회 관리를 마쳤음에도 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필요한 조치를 제때 취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이 사고 발생 이후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해밀톤호텔 옆 108라운지 앞에서 대규모 인파가 부대껴 넘어진(전도된) 시각은 오후 10시 15분이다. 그 직후부터 경찰 무전망은 ‘사람이 깔렸다’, ‘압사 있음’, ‘지원 필요’ 등 급박한 현장 보고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러나 그 시각, 이 전 서장은 관용차에 탄 채 대통령실 앞에서 이태원파출소로 향하는 도로 위에 갇혀 있었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불과 1.4킬로미터 거리를 관용차로 가려고 고집한 결과였다. 이 전 서장은 사고 발생 20여 분이 지난 10시 35분에야 관용차 내 무전기를 처음 들어 “모든 직원들을 보내라”고 말했다. 이후 사고 발생 50분이 지난 11시 5분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는데, 그때까지 무전망을 통한 지시는 전혀 하지 않았다.
민변 ‘이태원 참사 TF’ 소속인 오민애 변호사는 “사고 발생 이후 경찰이 용산구청이나 소방과 적절히 협력했는지 등 일부 아쉬운 판단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사실관계가 충실히 확인됐고 책임을 묻는 근거들이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상급자 김광호 서울청장 ‘무죄’... 2심에서 바뀔 여지도
반면, 서울서부지방법원(부장판사 권성수)은 지난 10월 17일 김광호 전 서울청장과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112상황관리관, 정대경 전 서울경찰청 112상황3팀장의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에서 모두 무죄 판결했다.
법원은 김 전 청장이 인파사고에 대비할 ‘일반적인 책임’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의무’까지는 없다고 판단했다. 인파 사고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예측하기 위해선 최소한 인파가 운집되는 형태나 시간 및 장소, 특징들이 파악돼야 하는데, 서울 전체를 관할하는 서울청장으로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본적인 사정을 직접 파악하는 게 아니라 1차적으로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가 제공한 정보에 의존해서 파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또 법원은 참사 당일 김 전 청장이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관리에 동원된 대규모 경비기동대 중 일부만이라도 이태원에 재배치해 참사를 막았어야 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관할서인 용산서가 기동대 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 전 청장이 감독 책임을 해태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전 청장의 무죄 요지는 사고 위험성에 대한 예견과 대응의 주요 책임은 관할서인 용산서장에게 있기 때문에 상급 지휘부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세월호 구조에 실패한 해경 지휘부가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던 것과 같은 논리다.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해경 지휘부는 재판 과정에서 현장 상황을 직접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 선체가 그렇게 빨리 뒤집어질 거라곤 전혀 예견할 수 없었다는 논리를 펼쳤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세월호 참사로 형사처벌을 받은 해경은 현장 지휘관이었던 123정장 뿐이었다.
그러나 김광호 전 서울청장의 형사책임은 2심에서 달리 판단될 여지도 없지 않다.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된 구은수 전 서울청장 판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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