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최초 인터뷰 : 쿠팡의 복수... 블랙리스트 폭로 그 이후
(홍주환 기자 2024. 07. 31. 17:18)
'쿠팡 블랙리스트'를 세상에 알린 제보자 A 씨가 뉴스타파와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A 씨는 블랙리스트 제보 이후 한 번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쿠팡 물류센터 직원이었던 A 씨는 블랙리스트 파일을 제보한 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쿠팡의 고소로 최근 경찰 압수수색을 당했다. A 씨는 쿠팡의 보복성 고소와 경찰의 편파적 수사 행태를 보며 뉴스타파와 인터뷰를 결심했다. A 씨는 인터뷰에서 "쿠팡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보했지만, 쿠팡은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꼬투리 잡아 보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쿠팡 블랙리스트, 일명 'PNG 리스트'(PNG는 기피 인물을 뜻하는 외교 용어인 'Persona Non Grata'의 준말)는 쿠팡의 물류센터 운영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가 만든 취업 방해 명단이다. 노동자 1만 6,450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생년월일과 같은 개인정보가 들어 있다. 물류센터에서 직접 일한 적 없는 언론인 수십 명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쿠팡은 블랙리스트 등록자들이 전국 어떤 물류센터에 취업을 신청해도 채용이 안 되도록 설계했다.
현재 쿠팡과 쿠팡풀필먼트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노동자·언론인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무단 수집했다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취업 방해를 했다는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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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블랙리스트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대기업 쿠팡의 비밀을 혼자 폭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A 씨는 지난해 9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같은 물류센터 전 직원이자 노동조합 간부였던 김준호 씨에게 블랙리스트 파일을 전달했다. 김준호 씨는 곧바로 노동조합, 변호사 등이 활동하고 있는 '쿠팡 대책위원회'에 해당 사실을 공유했고 이후 블랙리스트는 언론과 국회에 제보됐다. 지난 2월 쿠팡 블랙리스트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배경이다.
블랙리스트 폭로 이후 A 씨가 바란 건 쿠팡이 지금보다 더 나은 기업이 되는 것이었다. A 씨 표현에 따르면 쿠팡이 블랙리스트처럼 주관적이고 주먹구구인 방식을 버리고 '대기업답게' 객관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채용하길 바랐다.
블랙리스트 뺀 쿠팡의 '별건 고소'... 무엇을 노렸나
하지만 A 씨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쿠팡은 블랙리스트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조금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월 A 씨와 김준호 씨를 고소했다. 혐의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유출), 업무상 배임 등이었다.
쿠팡풀필먼트가 쓴 고소장에는 A 씨가 쿠팡의 영업비밀 134건을 포함한 내부자료 148건을 무단 유출했고, 이를 통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 148건의 자료 중 쿠팡 블랙리스트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고소는 블랙리스트 때문에 당했는데, 고소 내용에는 블랙리스트가 없다. 어이가 없다"며 "꼬투리를 잡아서 한 보복성 고소"라고 말했다. A 씨는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유출한 게 맞다'고 인정했다. 단 그 목적은 공익 제보를 위해서였다는 입장이다.
반면 쿠팡이 고소장에서 무단 유출로 규정한 다른 자료들에 대해 A 씨는 '유출했다'는 쿠팡의 주장 자체를 부인했다. '일부는 일상 업무를 위해 개인 휴대전화 등에 다운로드한 파일이고, 일부는 아예 존재를 모르는 파일'이라는 주장이다. 쿠팡의 자료보관 서버인 '셰어포인트(Sharepoint)'는 특정 기기나 IP로만 접속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계정만 있으면 어떤 기기로든 언제 어디서나 접속, 파일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애초에 '유출'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쿠팡 고소장에는 A 씨가 휴대전화를 통해 파일을 유출했다고 적혀 있다.
A 씨는 "내가 쿠팡풀필먼트에서 가장 낮은 직급인 레벨1이었다"며 "레벨1 권한 범위에 기밀이 있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정말로 보호해야 될 자료는 본사한테 권한을 요청하게끔 시스템이 돼 있다. 파일을 그냥 열리게 만들어 놓고 (영업비밀 유출로) 고소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쿠팡은 '유출 사실이 확실한 블랙리스트'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고, 유출 사실과 영업비밀이 맞는지도 모호해 보이는 다른 파일들은 오히려 고소장에 올렸다. 어떤 이유일까.
변호사들은 두 가지 노림수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째, 블랙리스트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은 채 제보자에게 보복할 수 있다. 쿠팡은 A 씨와 김준호 씨를 영업비밀 등 내부자료 유출 혐의로 고소했다. 따라서 유출된 자료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밝혀야 한다. 만약 블랙리스트가 고소장에 포함됐다면 쿠팡은 블랙리스트의 성격과 중요도에 대해 소장이나 수사 과정에서 설명해야 한다. 즉 블랙리스트 유출을 문제삼으려면 블랙리스트가 중요한 내부자료라고 주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블랙리스트에 대한 쿠팡의 설명이나 주장은 블랙리스트에 대한 경찰과 노동부의 수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둘째, 블랙리스트 제보자가 공익신고자로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다. A 씨와 김준호 씨는 블랙리스트 폭로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를 신청한 상태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신고와 관련해 범죄 행위가 발견된 경우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즉, A 씨가 쿠팡 내부자료를 유출한 게 법 위반이라 해도 블랙리스트를 공익제보하기 위한 목적이 인정된다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쿠팡은 고소장에서 블랙리스트를 제외했고, 이로 인해 A 씨와 김준호 씨가 '블랙리스트 제보와 무관한 별도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A 씨와 김준호 씨가 공익신고자로 인정되더라도 해당 고소 건과 관련해서는 법의 보호를 못 받게 의도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 쿠팡 대책위원회 소속 오민애 변호사의 설명이다.
-오민애 변호사/ 쿠팡 대책위원회
"만약에 블랙리스트 유출을 범죄라고 구성해 고소하면, 이에 대해선 공익신고자 지위에서 형을 감면받거나 이런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과 무관한 자료를 유출했다며 고소했기 때문에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을 같이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고소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외에도 A 씨와 김준호 씨는 쿠팡의 고소 내용에 허술한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에는 A 씨와 김준호 씨가 파일 무단 유출로 부정한 이익을 취득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부정한 이득을 취득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다. 또 A 씨가 상급자를 기망해 파일 보관 서버에 대한 접근 권한을 얻은 뒤 파일을 유출했다고 적혀 있지만, 역시 근거는 제시돼 있지 않다. 오민애 변호사는 "보통 고소를 할 때는 어느 정도 정황이 있을 때 하는데, '유출해서 부정한 이익을 취했다' 이런 문구는 아무 근거가 없어 보인다. 업무상 확인하거나 다운로드하는 게 당연한 파일도 고소장에 다수 들어 있는데, 이런 걸 (쿠팡이) 모르는 게 아닐 것 같다. 무리한 고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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