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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기지촌 운영 국가 책임 인정됐다
기지촌 여성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8년 만에 최종 승소했다. 피고 대한민국은 피해자들의 인격을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나경희 기자 2022. 11. 03. 06:54)
김숙자씨(76)가 이불을 꺼냈다. 50년이 지났지만 보풀 하나 일지 않은 푸른색 담요였다. 끝자락에 110V 플러그가 달려 있었다. “어제 산 거 같지? 내가 잘 모셨어. 우리 철수(가명)가 보내준 거. 예전에는 도란스(변압기) 꽂아서 썼어요. 이제는 오래됐으니까 불날까 봐 전기는 안 켜. 그래도 덮으면 따뜻해.”
1945년, 해방둥이 닭띠로 태어난 김숙자씨는 가난과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서울로 도망쳤다. 초등학교도 미처 마치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모살이뿐이었다. 열여덟 살, 아는 언니를 따라간 곳이 미군 기지촌이었다. 송탄, 진천, 성환, 태안, 평택 등 여러 곳을 전전했다. ‘철수’를 만난 건 진천에서였다. “쿠바 사람이야. 발음이 어려워서 내가 철수라고 한국 이름을 지어줬어. 김철수, 김은 내 성을 따다 붙이고.”
결혼을 약속하고 6년을 만났다. 철수가 미국에 돌아간 뒤 그도 기지촌을 나왔다. 편지는 이어졌지만 어느 날 도착한 엽서 한 장에 마음을 접었다. “철수 어머니가 보냈어. 내 아들이 한국 여자하고 결혼하는 거 싫으니까 앞으로 편지하지 마라, 그런 말. 아주 냉정하게 썼더라고. 그게 마지막이지.” 연락 한번 없이 50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여전히 ‘철수’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방문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며칠 전에 10월6일이 생일이었거든. 이제 일흔하나겠네.”
지난 9월29일 아침, 김숙자씨는 밤새 덮고 잔 푸른 담요를 가지런히 개켰다. 일찍 집을 나선 그는 대법원으로 향했다. 기지촌 여성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는 날이었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국가가 성매매를 조장하면서 기지촌을 운영했다는 2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확정했다. 판결문을 듣던 김숙자씨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재판정을 나온 뒤에야 작은 탄성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
“평생을 우리 죄인 줄 알고 살았지. 여기에 내 발로 들어왔으니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던 거야. 빠져나갈 수가 없었던 건데. 주위에서도 손가락질 많이 했잖아요. 앞에서도 아니고 뒤에서 수군수군. 사실 우리가 낸 방 한 칸짜리 월세들로 먹고살았으면서. 그래도 이제는 국가 잘못도 있었다고 인정을 했으니까, 옛날처럼 막 대하지는 않겠죠. ‘그래 봤자 양순이’라고 말할 사람은 할 테지만.”
(중략)
강제적인 성병 검진과 치료 기록은 국가가 기지촌 운영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됐다. 기지촌 여성들의 소송대리인 중 한 명인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10년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기지촌 여성인권연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에 자문을 했어요. 할머니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고 하시는데 가능하겠느냐고요. 처음에는 다들 될까, 반신반의했어요. 성매매 재판 자체가 어렵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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