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ㅣ2022-12-06
이태원 유족 손에 구겨 넣은 정부의 세 장짜리 ‘호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이태원에 간 사실을 전혀 몰랐던 유족은 10월30일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희생자가 이태원에서 사망했는데 경기도 ○○병원이니 신원을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방에 살고 있던 유족은 날이 어두워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희생자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무너졌다. 한 사람이 다가왔다. 서울시 공무원의 전화번호가 적힌 세 장짜리 종이를 내밀었다. ‘이태원 사고 관련 QnA(10. 30.)’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유족에게 장례를 어디서 치를지 물었다.
하루를 병원에서 보낸 유족은 다음 날 자신들이 사는 도시로 내려와 장례를 치렀다. 그때는 이미 서울 용산구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고요”라고 말한 뒤였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 유족은 우리를 만났다. 당시 받은 세 장으로 된 QnA를 들고 왔다. 재난지원금과 장례비 지급 절차가 빼곡히 적혀 있다는 것만 급하게 확인했다. 유족의 깊은 슬픔과 억울함에 대해 얘기 나누느라 당시에는 미처 꼼꼼히 내용을 보지 못했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하나 둘 소식을 듣고 모인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유족들이 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유족들의 요구안을 정리하면서 QnA 문서를 다시 꼼꼼히 보았다. 참사 바로 다음 날, 장례 절차는 유족의 뜻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고 얘기하면서 내밀던 종이에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게 기재되어 있었다.
“합동분향소는 어떻게 계획 중인가요?→합동분향소에 개별 위패는 모시지 않는 형태로 준비 중이며, 10월31일 오전 10시부터 서울광장 등에 설치됩니다.”
정부는 무엇이든 유족과 ‘협의’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정부의 뜻은 그 이후에도 곳곳에서 계속 확인되었다. 유족들이 소통과 공동 추모공간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청 안전총괄과 이름으로 온 문자가 대표적이다. 구청은 “유가족 30여 분이 요청하신 사항에 대하여 다른 분들의 의견 확인”이 필요하다며 “유가족 협의회 구성, 유가족이 모일 수 있는 장소 제공”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했다. 그마저도 “당일 저녁까지 답을 안 주면 의견 없는 걸로 간주하겠다”라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
(중략)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국가는 유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최선을 다해 답해야 한다.
참사 후 한 달이 지났다. 유족들은 존중받기는커녕 수사 촉구를 위해 서울경찰청 앞에, 국정조사를 위해 국회를 찾아야 했다.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당국자 누군가가 유가족을 존중하는 ‘말 한마디’라도 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아주 길고 힘든 길이 될지도 모르는 거리를 나서는 참사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ㅣ시사INㅣ
전문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