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ㅣ2022-07-10
[오민애의 법원삼거리] 60년 전에 머물러 있는 장해등급, 이대로 괜찮을까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장해급여 등을 신청해 산업재해(산재) 해당 여부를 심사받게 된다. 심사 후 산재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나오면, 장해의 정도에 따라 장해등급이 부여되고 이에 따라 산재보상보험금을 받는다. 장해등급의 결정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및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기준에 따라 이루어진다.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법원에서의 소송은 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재를 불승인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기준과 함께, 장해등급의 기준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장해등급의 기준’을 정하고 있고, 이는 1963년 11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만들어지면서 근로기준법 시행령(1962. 9. 25. 시행)에서 정하고 있는 ‘신체장해등급표’의 기준을 따르는 것에서 시작됐다. 해당 기준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력, 청력의 상실, 손가락, 발가락, 팔, 다리 등의 외형적 상실을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신경계통, 흉복부 장기의 경우 기능 장해의 정도에 따라 분류되어있는데, ‘노동능력상실률’에 따라 장해등급을 결정한다. ‘노동능력’을 쉽사리 상정하기 어려운 신경계통, 흉복부 장기의 경우에도 ‘노동능력’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육체노동, 남성노동 중심의 1960년대 사회에서 노동자가 일하다가 몸을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경우 또한 남성의 육체노동 중심으로 상정하였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장해등급 기준표에서 외관상 손실 내지 물리적 기능 상실을 중심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포함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기존의 장해등급을 유추해서 적용하고, 이를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에 온전히 맡기는 것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한다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62년 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령의 신체장해등급표
남성 육체노동 전제로 한 외형적 상실이 주요 기준
산업발달로 인한 새로운 질병과 장해, 여성 노동자 확대 등 반영 못해
일례로, 반도체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의 일종인 질병을 앓게 되었고, 항암치료 과정에서 비장을 절제하고 조기난소부전 진단을 받게 된 여성 노동자가 있다. 조기난소부전은 난소에서 난포자극호르몬이 생성되지 않아 임신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으로, 그 자체로 여성의 신체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내분비계 질환의 발병가능성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조기난소부전 자체에 대한 판단을 받지 못하고, 비장절제 상태와 조기난소부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비장절제의 경우 부여되는 장해등급을 받게 되었다. 반면 남성이 양쪽 고환을 상실한 경우는 장해등급기준표에서 장해등급이 별도로 부여되고 있다. 고환을 상실한 경우와 조기난소부전의 경우 생식능력에 장애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다르게 판단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경우는 고환을 상실하더라도 다른 기관을 통해 남성호르몬이 생성되는데에 반해, 여성의 경우 조기난소부전 내지 난소적출이 있으면 더 이상 난포를 생성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체에 초래하는 변화의 정도는 여성의 경우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형적, 물리적 기능 상실 여부를 중심으로 마련된 현행 장해등급기준에 의하면, 위의 경우 남성이 양쪽 고환을 상실한 경우에 ‘준하는’ 경우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혹은 ‘노동능력의 상실정도’가 어떠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을 얻게 될 때, 특히 첨단 산업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의 경우 희귀질환이거나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또한 예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여전히 물리적, 외형적 기능의 상실을 기준으로 장해등급을 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몸에 남는 상처, 장애의 양상과 정도가 다양해지는 현실을 반영할 수 없는 한계가 명백하다. 노동자 개인이 소송을 통해 다툴 것을 감수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장해등급 기준에 대해 다시금 살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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