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ㅣ2021-11-02
[오민애의 법원삼거리]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비극
대한민국 땅에 고향이 있음에도, 30년간 마음대로 고향땅을 밟을 수 없었던 이들이 있다. 재일동포인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합) 회원들은 한통련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여권발급이 거부되거나 1년~5년으로 기간이 제한된 여권이 발급되었고, 사실상 자유로운 출입국이 불가능한 상태로 30여년을 보내야했다. 한통련 의장에게는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고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입국시 국가정보원의 조사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이들은 왜 이런 불합리한 처우를 감수해야했을까.
한통련 회원들이 대한민국 국적자임에도 불구하고 고국땅을 마음대로 밟지 못하는 데에는 1977년 있었던 국가보안법 사건이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1977년 발생한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에 대한 간첩조작사건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한민통(한통련의 전신)이라는 단체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었다. 30년이 지난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위 간첩사건이 강압수사로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혔고, 2013년 5월 재심을 통해 판결은 취소되었다. 그러나 재심과정에서 한통련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지금까지도 한통련 회원들에 대한 여권 발급 거부 내지 제한 조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여권법 시행령은 국외에 체류하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통일·외교정책에 중대한 침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1년부터 5년까지의 범위에서 일반여권의 유효기간을 달리하여 발급할 수 있는 제한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조항이 근거가 된 것이다.
003년에 일시적으로 조건 없는 출입국이 보장된 적이 있었다. 당시 한통련 회원들은 이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2008년부터 여권발급과 입국이 다시 제한되었다. 여권발급신청을 하면 심사과정에서 한통련 회원인지, 한통련을 탈퇴할 의사는 없는지 질문을 받고, 조총련 경력이나 북한방문 경력 등 북한과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내용의 신원진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한통련 회원이라는 이유로 여권발급과 아무 관련도 없고 개인의 사생활 내지 양심의 자유와 관련된 질문까지도 감수해야했던 것이다.
1977년 간첩조작사건서 ‘반국가단체’ 낙인 한통련
2013년 재심 통해 판결 취소됐으나 여권발급 제한
국가인권위도 부당함 적극 의견 표명,
외교부의 자유로운 출입국 허용으로 이어지길
한통련 의장과 회원들은 2019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여권발급거부 및 제한조치가 거주이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진정을 제기하였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4월, 과거 판결이 한통련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여권발급제한조치를 할 수 없고, 진정인들의 어떤 행위가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에 위해가 되는지 증명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외교부에서 여권발급심사를 할 때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등에 중대한 침해를 야기하는 우려의 정도에 따라 구체적인 판단을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여권발급 제한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이므로 그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엄격하게 심사해야하는데, ‘반국가단체’ 구성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형식적으로 판단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심사를 하지 않아 진정인들의 대한민국 입출국 및 해외여행 등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더하여, 국가인권위는 한통련 의장에 대한 여권발급거부조치는 국가가 국민의 국내 입국을 불허함으로써 모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다름없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비록 한통련 의장의 여권발급신청에 대하여 거부가 있은 지 1년이 경과한 후 진정이 제기되어 해당 거부처분에 대하여는 각하결정을 하였으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여권발급거부처분이 정치적 활동을 하는 재외국민의 국내입국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크고, 더욱이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처분이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대한민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어 거주이전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외교부장관에게 재외국민에 대한 여권발급 거부조치가 자국민의 국내입국을 불허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여권법 및 시행령 등 관련 규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그동안 고국의 땅을 마음대로 밟지 못한 채 지나온 30년의 세월을 보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출입을 막은 행위가 부당하다는 점은 적극적으로 확인했다. 이에 따른 외교부의 관련 규정 개선, 그리고 한통련 회원들에 대한 조건없는 여권발급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일부 회원들에 대해서는 기간이 늘어난 여권이 발급되었지만 여전히 관련 규정은 달라지지 않았고 한통련 의장에 대한 여권발급은 거부된 상태다.
재일동포 간첩사건을 조작하여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자 했던 과거 유신독재정권의 과오를 제대로 청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한통련 회원들에 대한 조건 없는 여권발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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