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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율립

[월간율립 2021년 2월호] 법관 탄핵과 반성하지 않는 이들의 기원


월간율립 _ 2월(2021)

법관 탄핵과 반성하지 않는 이들의 기원


변호사 송봉준 

 

* 이 글은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정종현, 휴머니스트, 2019),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김두식, 창비, 2018), 「법관 탄핵의 요건과 절차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윤정인·김선택, 『공법연구』 제47집 제3호, 2019.2.)을 발췌 정리하였음을 밝힙니다.

 

 

1. 탄핵과 사법권 독립
 
판사에 대한 탄핵이 한동안 뉴스의 중심이었다.

 

탄핵이란 일반적인 사법절차나 징계절차에 따라 소추하거나 징계하기 곤란한 행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나 법관 등과 같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에 의회가 이를 소추하여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절차이다(헌법재판소 1996. 2. 29. 93헌마186 결정).

 

이는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다시 철회하는 제도로 민주주의 원리에 근거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그 권한의 행사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로 사유를 한정하여 그 범위를 축소하여 법치주의적 성격을 보완한 헌법수호제도의 하나이다.

 

판사에 대한 탄핵이 사법권의 독립을 해한다는 일부 주장이 있으나, 사법권의 독립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여야 하는 법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만약 사법권의 독립을 절대화하거나 사법부의 독립을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의 어떤 감시나 견제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왜곡하여 이해한다면 사법권의 독립은 법관 개개인의 특권 또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고, 결국 사법부가 외부로부터의 비판과 견제를 막는 방패로 악용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2. 판사에 대한 탄핵의 역사

 

2021년 이전 우리 역사에서 법관에 대한 탄핵은 두 번 시도되었는데 모두 인용은커녕 탄핵소추도 하지 못하였다.

 

1985년 유태흥 대법원장,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비판적 의견을 기고한 판사를 무리하게 전보조치하거나 정권의 의사에 반하는 판결을 한 판사들에 대하여 불리한 전보조치를 하는 식으로 인사권을 남용하여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였다는 사유로 야당 의원 102명의 발의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는데, 국회 표결에서 부결되어 탄핵을 면하고 다음 해 대법원장의 임기를 마쳤다.

 

2009년 신영철 대법관, 그가 서울중앙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하던 2008년 촛불집회 관련 시국사건에 대하여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 배당’을 하고, 이메일이나 전화로 담당 법관들의 재판에 개입하고, 대법원장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하거나 담당 법관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경고 또는 주의촉구’ 조치를 내려지는데 그치자 사법권 독립과 법관의 심판권 침해를 이유로 2009년 11월 6일 야당 의원 105명의 발의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11월 1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었으나 당시 여당의 반대로 국회법상 처리시한을 넘겨 폐기되었고, 2015년 2월 신영철 대법관은 6년의 임기를 다 마치고 퇴임하였다.

 

사법농단 사건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중심이 되어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목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 등에 불법적인 로비를 하고 심지어 과거사 관련 재판 내지 국정 운영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에 관하여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재판에 개입하였으며 그러한 불법적이고 부당한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을 사찰하고 신분상의 불이익을 가하는 등 조직적으로 사법행정권을 오·남용하여 법원 스스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다. 그러나 2018년 12월 18일 대법원 징계위원회는 징계심의 결과, 13명의 판사 중 3명에 대하여 정직, 4명에 대하여 감봉, 1명에 대하여 견책, 그리고 나머지 2명은 불문, 3명은 무혐의로 결정하였다.

 

이렇듯 사법부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국민으로부터 사법에 대한 책임추궁의 임무를 위임받은 국회가 판사에 대해 탄핵소추를 발의·의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논란이 될 사안은 아니다.

 

3. 반성하지 않는 이들의 기원

 

지금까지 직무상 심각한 비위행위나 사법권 독립의 훼손·침해가 문제가 된 중대한 사건의 당사자가 된 법관에게 물어진 법적 책임은 거의 없거나 극도로 미미하였다. 잘못에 대해서 겸허히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사법부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반성하지 않는 이들의 잘못된 시작을 돌아본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료 중에서 사법 관료, 즉 판사와 검사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들은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에 다시 철저한 총독부의 신원 조회를 통과하고, ‘사법관시보’라는 견습 과정을 거쳐서 임용되었다.

 

순수하게 변호사를 지망한다면 ‘조선변호사시험’이라는 다른 길이 열려있음에도 굳이 일본에서 시행되는 고등시험 사법과 응시는 일제하에서 판검사를 해보겠다는 의도를 아주 명백하게 드러낸 행위였다. 물론 판검사가 되려면 단순한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일제통치, 즉 천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야 했다.

 

조선에서 아무 기반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고등시험 사법과의 응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였다. 6월 말 도쿄에서 시행되는 고등시험 사법과에 도전하는 조선의 법학도들은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관부연락선에 올랐다. 아예 1년을 잡고 일본에 머물려 시험을 준비한 사람들도 있었고, 일본본토의 많은 조선인 유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치려면 왕복여비뿐만 아니라 물가가 비싼 도쿄에서 최소한 한 달을 버틸 돈이 필요했다.

 

고등시험은 흔히 말하듯 흙수저가 시험에 붙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험제도가 전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재력이 없으면 시험을 보는 것조차 꿈꿀 수 없는 시대였다. 해방 후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 중앙일보사 사장을 지낸 홍진기는 ‘1939년 도쿄로 가는 길에 후지산을 보고 시험에 떨어졌고 1940년에 후지산을 외면하고 시험에 붙었다’는 회고를 남기는 등 당시 수험생 사이에서는 시모노세키에서 도쿄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후지산을 바라보면 시험에 떨어진다는 징크스가 존재할 정도였다.

 

조선총독부의 사법관 채용은 제국대학 출신이거나 고등시험 성적이 우수하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 핵심 기준은 바로 지원자의 사상 경향이었다. 사법관시보 선발에서 면접관들은 “천황에 대한 충성심만 바로 박혀 있으면 되는 것이지 법률을 알고 모르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사상이 그만큼 중요했고 엄격한 신원조회는 필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9월 8일 미군이 조선에 들어왔다. 1945년 10월 11일 미군정청은 일본인 판검사 전원을 일시에 퇴진시키면서 조선인 판사 39명과 검사 23명을 임명했다.

 

특이한 것은 이날 퇴임자였던 장경근, 민복기, 이영섭 등이 같은 날짜에 조선인 판검사로 임용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명으로 면직사령이 나고, 조선인명으로 다시 임명사령이 난 것이다. 이를테면 장경근의 경우 면직사령의 ‘나가야마(長山)’로는 퇴임하고, 임명사령의 조선인 ‘장(張)’씨로는 법원장이 되고, 민복기는 ‘이와모토(岩本)’로 퇴임하고, 조선인 ‘민(閔)’씨로, 이영섭은 ‘다케히라(武平)’로 퇴임하고, 조선인 ‘이(李)’씨로 신임판사가 되었다.

 

장경근은 이승만 정권에서 내무부차관, 국방부차관, 내무부장관을 지내며 온갖 반민주 반헌법적 행태에 관여했고, 3.15 부정선거를 주도해 4.19 혁명 후 일본으로 밀항하였으며, 민복기와 이영섭은 훗날 대법원장을 지냈다. 4.19 혁명 때 시위대에 발포 명령을 내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내무부 장관을 한 홍진기, 조봉암에게 사형을 판결한 대법관 변옥주 등 식민지 사법관을 거쳐 해방 이후에도 승승장구한 너무나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 대다수는 식민지 경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축적한 사회자본은 다시 그 후손들의 사회적 신분으로 상속되었다.

 

4. 마치며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을 계기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 사법부의 기원에 대해 반추해보았다. 부디 이번 일을 디딤돌로 삼아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고 재판에 부당하게 영향을 끼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 법원 자체의 권력 남용과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방지하여 공정한 재판을 수행하는 새로운 사법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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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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