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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율립

[월간율립 2020년 8월호] 다른 8월을 기대하며



월간 율립 _ 8월(2020)

다른 8월을 기대하며

 

변호사 송봉준

 


1. 슬픔과 환멸로 기억되는 8월

 

“3년 전 해방의 감격은 벌써 하나의 묵은 기억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도 기쁘더니, 그렇게도 감격스럽더니, 이제 우리의 가슴속에는 이 기쁨과 감격 대신에 새로운 슬픔과 환멸이 자리를 바꾸어 들어찼다. 

 

이제야 제2해방이 있어야 할 것은 누구나 아는 바요 그것을 기다리는 마음도 누구나 초조하다. 그런지라, 3년 전의 해방을 정말 해방으로 알고 기쁨과 감격의 눈물로 엮은 이 책을 읽을 때에 누구나 달라진 세월에 부대끼며 다시금 슬픔을 아니 느낄 수 없이 되었다.

무엇이 달라진 세월인가? 

 

똑바로 따지면 다르기는, 1945년 8‧15 이후 잠깐일 것이다. 도로아미타불이라면 심한 말일까? 전날에 내 형을, 내 매부를 죽게 하였고, 내 아버지를, 나를, 내 아우를, 내 조카를 매달고 치고, 물 먹이고 하던 그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러한 권리가 있는 세상이다.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 따로 있고 인민은 여전히 호령 밑에서 불행과 무지와 빈곤에 울어야 한다면 이것은 인민의 처지에서 볼 때에 권력 잡은 지배 세력이 바뀐 것뿐이지 인민 전체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것은 아닌 것이다. 여기, 뒷날에 정말 해방이 오거든 또 한 번 『사슬이 풀린 뒤』를 써야 할 까닭이 있다.”

 

이 글은 1945년 8월 해방으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오기영이 『사슬이 풀린 뒤』라는 책을 내면서 머리말에 쓴 것이다. 무엇이 기쁘고 감격스럽던 해방을 슬픔과 환멸로 바꿔놓았을까? 해방으로부터 75년이 지난 지금, 오기영이 느꼈던 슬픔과 환멸은 사라졌을까?

 

 

2. 반복되는 8월의 모습

 

2020년 8월의 모습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친일청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친일청산이 ‘빨갱이의 국론분열 조장행위’, 이제는 ‘친일파 장사’라고 몰아붙이는 세력이 존재한다. 

 

7월 백선엽의 죽음과 현충원 안장 관련 문제로 시작하여 김원웅 광복회장의 8.15 경축사 논쟁까지. 대한민국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못하였고, 급기야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가로채는 일까지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방공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연계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정치 세력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냉전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미국(미군정)은 반공을 위해서는 친일파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정책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대거 중용하였다.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으나, 친일세력의 강력한 방해와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들은 경찰을 앞세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간부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다가 급기야 무장경찰을 동원해 반민특위를 사실상 강제해산시켰다. 이 무렵 ‘국회 프락치 사건’이 발생해 친일청산에 앞장선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이 사건으로 대거 구속됨으로써, 이제 친일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빨갱이 짓이라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게 되었고, 역으로 친일파는 반공을 내세워 애국자 행세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국전쟁 중 반민족행위처벌법이 폐지되면서 이미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되어 특별재판부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극소수의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벌 자체도 무효화됨으로써 반민특위를 통한 친일청산은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권력의 중심에 선 친일세력에 의해서 친일은 금단의 역사가 되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중책을 고루 맡았지만 늘 국가 민족에 대한 열의를 잊지 않았다’, ‘속으로는 국가 민족에 대한 숨은 뜻을 다 품고 지내왔다’는 왜곡된 기억속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위관료, 검사, 판사, 군인, 경찰 등을 지냈던 경력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이 되었고, 친일과 관련된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일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망한 지금, 그들의 후손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친일반민족행위 이면에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거나, 민족을 위해 일제에 협력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따지기까지 하고 있다.

 

 

3. 다시 ‘사슬이 풀린 뒤’를 쓰기 위해

 

2004년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과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일정 부분 성과를 내었으나, 친일청산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다. 아직도 친일청산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 친일청산은 결코 완결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해방된 지 75년이 지난 오늘도 친일청산을 소리 높이는 것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개개인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와 관련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성을 이끌기 위한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려는 이유는 그 과거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실태를 밝혀 기록에 남기고, 친일의 역사를 기억하고 거기에 대해 반성함으로써 다시는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정확한 기록과 평가로 친일청산을 완수하여야 한다. 친일청산과 함께 조국해방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투쟁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항일운동에 대한 기록과 정당한 평가조차 불허되고 이름조차 지워졌던 이념에 의해 희생된 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 기억하여야 한다.

 

2020년 8월이 과거로 흘러가는 오늘, 다른 8월에는 또 한 번 『사슬이 풀린 뒤』를 쓰고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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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0-08-28

조회수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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