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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율립

[월간율립 2020년 7월호] ‘20대, 여성, 청년 노동자’와 국가보안법


월간 율립 _ 7월(2020)

20대, 여성, 청년 노동자’와 국가보안법 

 

변호사 박현서

 


1. 국가보안법은 불편하지 않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노력 이후 16년 만에, 다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사건의 당사자들은 2017년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하였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2020년 이 위헌제청사건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중심으로 한 대리인단이 꾸려졌다.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하자는 단체가 발족되기도 하고, ‘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전시회와 같이 일상 속의 국가보안법, 나와 국가보안법을 연결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들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여론이 힘있게 모이지는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국가보안법은 그 태생부터가 위헌적이다. 법리적으로만 보자면 위헌적 요소가 다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순수한 법리적 판단의 결과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2020년의 남북 관계, 변화된 북한 사회의 현실, 국민들의 인식의 변화 역시 중요한 고려의 요소일 것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재판관을 설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에 공감하고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대다수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은 그다지 불편한 존재가 아니다. 불편하지 않음에도 없애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언가에 대한 불편함 감정은 그 무언가를 구체적 내 문제로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이 ‘나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집단’에서, ‘다른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야 한다.

 

2. 국가보안법이 나의 문제가 되려면

 

 그렇다면 2020년의 국가보안법의 위헌성, 나아가 폐지에 대한 설득은 완전히 다른 접근이어야 한다. 그간 국가보안법 폐지 여론의 주요한 논리는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거나, 좀 더 나아가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하여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에게 표현의 자유는 ‘김일성 만세’를 외칠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 명의로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만우절 대자보를 쓰며 김정은을 풍자하는 자유이다. 이들이 일상 속에서 국가보안법이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까.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을 설명하면서, 국가보안법의 해석과 적용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고, 기소 역시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파주시 안소희 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통합진보당 행사에서 ‘혁명동지가’를 불렀다는 것이 이유다. 나는 안소희 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고 의원직까지 상실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혁명동지가 불렀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논리로는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하면서 농성하는 대학생들에게 ‘혁명동지가를 부를 자유’는 전혀 나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태생이 위헌적이며, 수많은 반인권 악용 사례가 존재한다는 법리적 논박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결정적 동인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는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학문, 예술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옥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한 개인의 사상과 인식이 조직적·사회적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을 차단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제한한다. 대학 내에서 학생회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시절,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만약 국가보안법 폐지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집단이 20대, 여성, 청년과 같은 집단이라면 이들의 일상에서, ‘모여야 하지만 모이지 못하는 곳’은 어디일까. 우리 일상의 3분의 1을 보내는 일터에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노동조합’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자본과 권력에 가장 위협적인 결사 역시 ‘노동조합’이다. 그렇다면 가장 취약한 곳, 노동조합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일하는 이들로부터 새로운 국가보안법 폐지의 이야기를 풀어볼 수는 없을까.

 

3. 노조 혐오의 기원, 국가보안법

 

 네이버 공동성명, 넥슨 스타팅포인트, 카카오 크루유니온…. 이름에 ‘노동’은 없지만, 모두 노동조합 이름이다. 이들 노조에서는 ‘노조 간부’를 ‘스태프’, ‘GM(길드 매니저)’, ‘운영진’이라고 부른다. 한 설문 조사 결과, 직장인 10명 중 8명은 노동조합 명칭에서 ‘노동’을 빼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고 답했다. 가장 많은 이유는 “기존 노조문화와 차별화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필요하긴 하지만, 노동이란 단어는 불편하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기존 노조문화’란 무엇일까.

 

 1948년 제정 당시의 국가보안법 제1조는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국가보안법실무제요는 위 제1조에 해당하는 단체로 사실상 이승만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집단과 개인, 세력을 포괄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고,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조직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이었다. 전평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직된 노동조합으로 조합원은 50만에 이르렀다. 그러나 좌익세력 척결을 위해 노동운동을 탄압한 미군정 하에서 수많은 전평 조합원들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때 형성되었던 노조에 대한 ‘빨갱이 프레임’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은 정권에 반대하고 위협적인 세력에게 선별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특히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성장을 경계하였던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통해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노동조합 활동은 외부 불순 세력, 즉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이들의 지령에 따라 활동하는 노동운동 세력은 ‘빨갱이’라는 강력한 낙인을 찍는 것이다. 노동조합 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욕먹을 뿐이다. ‘너네가 뭘 할 수 있겠냐, 회사도 어려운데 너네 생각만 하냐’. 그러다 노조가 힘을 형성하게 되면 결국 마지막은 ‘빨갱이논리’가 된다.

 

 그래서 조직된 노조를 해체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국가보안법인 동시에, 우리가 노동조합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기제 역시 국가보안법이다.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는 이들도, 심지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한 이들도 이 강력한 노조혐오에서 사실은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 노조문화’라는 것이 단순히 대기업·남성 중심의 활동, 수직적이고 경직된 문화, 관성화된 조합활동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노동조합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이유에는 노동조합 혐오 역시 존재할지 모른다.
 
4. 누구에게나 노동조합 할 권리가 필요하다

 

 노동 현장에서의 성희롱 피해 3분의 2는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피해자의 85%는 여성이며, 특히 사회초년생인 20대가 50% 이상이다. 여성의 상당수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데, 임금체불 피해자의 77.2%는 3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이다. 이들이 임금 체불되어도 노동청에 신고하지 못하고, 성희롱을 당해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을 보호할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이다. 2018년 말 기준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1.8%,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0.2%에 불과하다.

 

 누구에게나 노동조합 할 권리가 필요하다. 30인 미만 사업장과 같이 영세한 중소 사업장에 근무하는 여성,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더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영세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주의 ‘노동조합 혐오’가 아무런 견제 없이 작동된다. 눈치 볼 사람도, 눈치 볼 이유도 없다. 그래서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실제로 노동조합을 조직함으로써 발생하는 해고의 위험, 차별, 불이익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가보안법이 사람들을 모일 수 없게 하고, 함께 행동할 수 없게 하는 악법이라면, 그래서 우리가 노동조합 하기 주저했던 이유가 국가보안법이 만들어낸 뿌리 깊은 노동조합 혐오였다면, 어쩌면 노동조합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새로운 국가보안법 폐지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5. 나가며

 

 16년 전과 같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아니라, 혁명동지가를 부르는 사람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청년들에게는 K-국가보안법을 반대하는 공감대를,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원한 국회의원을 지지하는 여성들에게는 나의 일터를 바꿀 수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이야기를 쉽게 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 나에게 ‘그래서 지금 무슨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뾰족한 답은 없다. 노동조합 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도 또 하나의 다른 목소리에 대한 아주 얕고 짧은 고민일 뿐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문 앞에도 가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 임금 체불되면서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입 다물고 해고되어야 하는 취약한 20대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법안은 무엇보다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일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한 위헌결정을 한다면, 21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전부 폐지 법률안이 발의될 수 있을까. 전 박원순 시장의 조문 국면에서, ‘애도하나, 조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두 청년 국회의원이 있다. 그 입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류호정, 장혜영 의원은 자신들을 지지하고, 자신들이 대변해야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20대, 여성, 청년 노동자”. 나는 이들이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면, 국가보안법은 폐지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장혜영 의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모두가 평등하게 인간의 존엄을 누리기 위해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면, 바로 그 이유로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필요하다. 나는 이 영리한 청년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을 발의하면 좋겠다. 어쩌면 다른 목소리는 전혀 다른 공간, 전혀 다른 주체들로부터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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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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